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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기의 작품세계
씨실과 날실로 만나는 섬유조형의 여정
정순기 작가는 섬유조형 이라는 다소 생소하고 실험적인 작업을 보여준다.
섬유 직조를 위한 씨실 날실 자체에 매료 되어 작가만의 독창적 기법으로 입체 조형 작품을 빚어낸다. 많은 경우 치밀함과 밀도 있는 작업이 요구 되는데 이유는 입체 조형물을 위한 재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입체 조형물은 단단한 재질이여야 한다는 것은 극히 단순한 상식이지만, 상식과 관념을 뛰어 넘어, 섬유라는 재질상의 단점은 보완하고, 유연성의 장점은 극대화 하여 한계성을 극복 했다.
천을 꼬아서 표현하는 아이디어로 형태감이나 덩어리감에는 손색이 없는 조형성과 섬유 고유의 부드러움과 나른함을 지닌 작품을 완성 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섬유가 지닌 고유한 실용성의 의미에 조형예술 영역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대 시킨 작가적 재간을 높이 평가 한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꼬아가면서 혹은, 한가닥씩 한가닥씩 풀어가면서 쌓고, 결합 하고, 때로는 해체 하면서 작가만의 형이상학적 세계로 접근한 흔치 않은 작업이다.
씨실과 날실이 직조 되어 나온 옷감이라는 완성품보다는 좀 더 근원적 소재인 코튼, 사이잘삼, 양모, 마, 천연 노끈등
천연 섬유만을 고집하며 작업했다. 촉수나 돌기 같은 개체들이 모여서 짜임새 있고 밀도 있는 하나의 덩어리로 응집된다. 마치 모자이크 짜맞추기를 완성하듯이 촘촘히 개체를 규칙적으로 배열하고, 연결하여 의도한 조형을 완성 했다.
섬유를 꼬아 만든 작품들은 소라를 연상 시키는 형태를 띠고 있어 누구나 낯익은 반가움을 느낀다.
작품에 귀를 대면 감상자의 귓가에 까지 침묵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으로 작가와 감상자는 작품을 매개로 자연스러운 소통을 끌어낸다.
또한, 사이잘삼 섬유를 소재로한 작업에서는 한가닥씩 풀어내는 기법으로 작업 했다. 해체해 놓은 사이잘삼은 흡사 명태포 보푸라기처럼 보이는데 시각과 촉각 뿐만 아니라 미각까지 자극한다. 사이잘삼 섬유 보푸라기에 알을 살포시 넣어 두면 제법 닭이 알을 품고 있을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난다. 작가는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라는 사건을 자신만의 소통 언어로 표현 하고 있다. 알을 품고 있는 조형물 자체만 바라봐도 이미 절대적 인간에 대한 무한한 주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담게 된다.
일련의 작품들은 천연 소재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색상을 그대로 사용한다. 주로 단색이거나 무채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가 의도하는 색채효과는 단순화 되고, 절제 된 색감으로 인해 한층 더 영향력 있는 결과물이 된다는 것이다.
섬유를 잘게 부수고, 짜맞추고, 풀고, 해체하고, 뭉치고를 반복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하지만,
놀랍게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부유 한다 .
현실을 뛰어넘는 영혼의 울림과 외침이 있는 초월적 공간으로 접근 하려는 시도들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작가로 세상과는 유별한, 고독하지만 가치 있는 작가만의 여정이다.
유미형/ (사) 한국여류화가협회 이사, 사랑의교회 미술인선교회명예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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